정치적 이슈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물류센터로 출근하는 길목에서조차, 혹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며 노동을 수행하는 순간에도, 정치적 사유는 끊임없이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뉴스를 접하거나 거리에 붙은 현수막을 보는 것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자각한 순간부터, 이 문제는 도망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나는 내면 속에서 여러 겹의 얼굴과 마주해야 했다.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며 문제를 외면하고 싶어하는 나이브한 태도였다. 세상에 쏟아지는 이슈들을 단순히 "뉴스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면서, 내 삶과 단절된 외부의 사건으로만 이해하려는 무심한 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얼굴, 즉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권위에 굴종하려는 내면의 파시즘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역사 속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의 그림자와 맞닿아 있었고, 동시에 오늘날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권위주의의 습성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안일한 태도와 권위적 충동이 결합된 일종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내면과 마주하게 된 셈이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만약 내가 이 모든 문제를 모른 척 넘어가 버린다면, 나는 결국 겁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단순히 개인적인 심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침묵하거나 회피할 때, 사회는 그만큼 퇴보할 수 있고, 반대로 우리가 발언하고 참여할 때는 진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그 선택이 쌓여 결국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 깨달음은 내게 커다란 부담이자 동시에 불가피한 성장의 과정이 되었다. 나는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나약함과 권위적 충동을 반복해서 직시해야 했고, 그것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갱신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은 정신적으로 고단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싸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단련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결국 정치적 사유는 삶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노동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내면의 질문이자 실천의 문제였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안다. 중요한 것은 그 두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사유하고, 자기비판을 거듭하며,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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