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모던 마르크스주의: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를 가로지르는 변혁의 정치철학
1. 서론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비판이론의 흐름은 근대(모더니티)의 진보 신념과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적 회의론 사이에서 진동해왔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이러한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으며, 후기 구조주의, 문화연구, 탈식민주의 등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재구성해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적 회의론은 종종 실천적/변혁적 전망을 희석시켰고, 반대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근대주의적 신념은 복잡한 후기자본주의 현실을 설명하기에 한계를 드러냈다.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은 이러한 양극단을 ‘진동(oscillation)’ 속에서 종합하려는 미학/사상적 경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본 논문은 메타모더니즘의 미학적/인식론적 구조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적 분석 틀과 결합시켜, 변증법적 진동을 통한 21세기 혁명 이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2. 메타모더니즘의 철학적 구조
2.1 진동(oscillation)과 이중 태도
메타모더니즘의 핵심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지속적 진동이다. 이는 진보에 대한 ‘순진한 신념’과 해체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동시에 유지하는 태도로 설명된다(Frederici & Vermeulen, 2010). 이중적 태도는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모순된 감정과 전략을 번갈아 취하는 실천적 전략이 된다.
2.2 구조적 진동의 정치성
메타모더니즘은 과거의 대서사(meta-narrative)를 복원하면서도, 그 절대성을 경계한다. 이는 혁명적 목표를 상정하되, 그것이 절대적·단선적 필연으로 주어졌다는 전제를 거부하는 정치철학적 입장과 호응한다. 이 점에서 메타모더니즘은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적 역사관과 긴장하면서도, 그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갱신할 수 있다.
3.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위기와 재구성
3.1 후기자본주의와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한계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디지털 플랫폼 경제, 탈산업화, 기후위기 등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 분석 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투쟁과 생산관계의 분석에 강점을 지녔지만, 문화/미디어/정동(affect) 영역에서 발생하는 권력 작동을 포착하는 데 제한적이었다.
3.2 문화정치와 미학의 문제
포스트모던 문화이론은 문화와 정치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변혁적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문화/미학 영역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전략을 재활성화하려면, 미학적 감수성과 변증법적 비판의 접목이 필요하다.
4. 메타모던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틀
4.1 변증법적 진동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정반합의 운동을 통해 역사 변화를 설명한다. 메타모더니즘의 ‘진동’ 개념은 이 변증법을 비선형·비목적론적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여기서 진동은 단순한 중간지점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배열되는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4.2 유토피아의 재정의
메타모더니즘은 유토피아를 ‘실현 불가능하지만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 구조’로 본다.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는 계급 없는 사회라는 구체적 목표를 지니지만, 메타모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이를 고정된 청사진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의 장으로 재해석한다.
4.3 다중적 주체 형성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체는 주로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러나 메타모더니즘적 접근은 계급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정체성, 환경적 이해관계를 다중적·교차적으로 진동하는 혁명 주체로 설정한다.
4.4 미학과 정치의 통합
메타모더니즘은 미학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치적 감각과 행위의 토대라 본다. 메타모던 마르크스주의는 예술/서사/문화 코드 속에 변혁적 정동을 심어, 혁명적 상상력의 ‘감각적 조건’을 확장한다.
5. 실천 전략
- 서사적 재구성: 절대적 대서사를 복원하되, 유연하고 다원적인 방식으로 재작성한다.
- 감정정치(Affective Politics): 냉소와 희망, 아이러니와 진정성 사이를 전략적으로 오가며 대중과 소통한다.
- 교차투쟁의 조직화: 계급/젠더/생태/문화 투쟁을 동시다발적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 미학적 개입: 예술과 미디어를 변혁 전략의 핵심 도구로 사용한다.
6. 결론
메타모더니즘과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은 단순한 사상적 혼합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감각/서사/실천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접근은 유토피아적 이상과 비판적 거리두기, 역사적 분석과 문화적 개입, 구조 분석과 정동 정치 사이를 오가며 21세기 혁명 전략을 재구성한다. 메타모던 마르크스주의는 미래를 결정론적으로 예측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실천 속에서 갱신하는 ‘영원한 진동 상태’의 정치철학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Frederici, T., & Vermeulen, R. (2010). Notes on Metamodernism. Journal of Aesthetics & Culture, 2(1).
Jameson, F. (1991).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Marx, K., & Engels, F. (1848).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Eagleton, T. (1996). The Illusions of Postmodernism. Blackwell.
Bloch, E. (1954). Das Prinzip Hoffnung. Suhrkamp.